
2026년 6월 17일, 이슬라마바드에서 한 장의 문서 위에 두 나라 대통령의 서명이 얹혔다. 미국과 이란이 전쟁을 멈추기로 한 양해각서, 이른바 이슬라마바드 각서다. 여기에는 60일 안에 최종 합의를 짓는다는 시한까지 담겼다. 사람들은 이 종이가 평화의 문을 여는 열쇠라 여겼다. 그러나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그 종이는 호르무즈 해협의 물살 위에서 찢기기 시작한다. 7월 6일과 7일, 이란 혁명수비대가 오만 영해를 지나던 상선 세 척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앙카라 나토 정상회의 석상에서 "휴전은 끝났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미군은 이란 표적 약 90곳을 타격한다. "저들이 한 번 때리면, 우리는 스무 번 때린다." 트럼프의 이 말 한마디에, 서명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각서는 숨을 거두는 듯 보인다. 우리가 던지는 물음도 바로 이 지점에 놓인다. 외교는 아직 살아 있는가.
두 나라의 기이한 역설
두 나라 모두 "대화를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미사일을 멈추지 않는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 "이란이 협상을 요청했고 우리는 응했다. 다만 휴전은 끝났다"고 적었다. 이란의 협상 책임자는 "우리는 미국인을 믿지 못한다"며 "전면 방어"를 말한다. 한쪽은 몽둥이를 든 채 악수를 청하고, 다른 한쪽은 주먹을 쥔 채 협상 탁자에 앉는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대화의 문은 열려 있으나 이란이 기본 의무를 저버리는 동안에는 협상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 모순의 뿌리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떤 합의도 물 위에 쓴 글씨가 된다.
두 나라가 이토록 오락가락하는 데에는 까닭
이는 각자 등 뒤에 국내 여론과 자존심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힘을 보여야 협상장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믿고, 이란은 물러서는 순간 굴복으로 비칠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두 나라는 때리면서 대화하고, 대화하면서 때린다. 이 악순환은 군사력만으로는 절대 끊기지 않는다. 스무 번을 때린다 한들, 신뢰가 없으면 스물한 번째 총성이 다시 울리기 때문이다.
모든 갈등의 매듭은 호르무즈 해협
전 세계 원유의 약 20퍼센트가 이 좁은 물길을 지난다. 문제는 각서의 문장 하나에 있다. 각서는 이란이 상선의 안전한 통항을 위한 조치를 마련하고, 최소 60일간 통행료를 물리지 말며, 오만과 해협의 향후 관리 방안을 협의하라 적었다. 그런데 같은 문장을 두 나라가 정반대로 읽는다. 이란은 이를 오만과의 공동 주권으로 해석한다. 60일이 지나면 해협을 공동 관리하고 통행료를 걷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곳을 국제 수로라 못 박는다. 새 관리 방안은 걸프 국가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문장, 두 해석. 이번 충돌의 불씨도 여기서 튀었다. 오만과 유엔 기구가 오만 해안 가까이 새 항로를 열자, 이를 자국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본 이란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혁명수비대는 자신들이 지정한 "권위의 항로"만을 고집한다. 한 문장의 틈이, 곧 전쟁이 다시 불붙는 자리가 된다.
두 나라가 합의에 도달하는 방법은 있나
지금까지의 상황이 가리키는 길은 세 걸음이다. ▶첫째, 모호한 문장을 정밀하게 다시 써야 한다. "향후 관리"라는 흐릿한 표현을, 오만과 걸프 국가, 유엔이 참여하는 구체적 관리 체계로 바꾸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기술의 언어다. ▶둘째, 신뢰를 단계로 쌓아야 한다. 지난달 양측은 일주일간 조용히 하자는 데 합의한 적이 있다. 미사일이 날지 않는 동안 각서의 세부를 다듬자는 약속이었다. 동결 자산의 단계적 해제, 검증 가능한 통항 재개처럼 작은 신뢰가 포개져야 큰 합의가 선다. 지금 두 나라 사이에 가장 부족한 화폐는 달러가 아니라 신뢰다. ▶셋째, 얽힌 전선을 함께 풀어야 한다.
이란은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교전이 각서 위반이라 주장한다. 호르무즈만 붙들고 레바논을 외면한 합의는 반드시 무너진다. 그래서 중재자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카타르와 파키스탄, 오만이 다리를 놓고, 스위스에서 고위급 회동이 열렸다. 도하에서는 미국과 이란 대표단이 각기 다른 방에 앉아, 중재자가 두 방 사이를 오가며 말을 옮기는 간접 협상이 이어졌다.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는 협상, 그 자체가 불신의 깊이를 말해 준다.
이 거대한 지정학의 밑바닥에는 사람이 있다
호르무즈에 발이 묶인 배들, 배럴당 75달러를 넘긴 국제 유가, 항로를 돌려야 했던 무역선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해협에 발이 묶였던 우리 선박 26척 가운데 24척이 겨우 빠져나왔다.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헬륨 공급까지 흔들린다. 먼 중동의 포성이 우리 밥상과 공장의 불빛으로 곧장 이어진다. 지정학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종이 한 장의 해석 차이가, 지구 반대편 한 가정의 기름값과 일자리를 뒤흔든다. 브렌트유는 닷새 만에 4퍼센트 가까이 뛰었고, 태국과 한국의 선박들은 밤을 새워 위험 해역을 빠져나갔다. 숫자 뒤에는 언제나 뱃사람의 두려움과 가족의 기다림이 있다. 협상이 늦어질수록 그 대가는 힘없는 이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오랜 기간 중동에서 체류하면서 그 세월이 내게 가르쳐 준 진실이 하나 있다. 그건 불신은 총보다 질기고, 합의는 서명보다 느리다는 사실이다. 나는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원수처럼 갈라섰던 두 사람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같은 상 앞에 앉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그들을 다시 잇게 한 것은 조약이 아니라, 상대의 눈을 견디는 용기였다. 거창한 각서의 조항들 뒤에도,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다. 미국과 이란이 마주한 문제도 결국 사람의 문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두 민족이, 함께 살아갈 한 문장을 쓰려 애쓰는 일이다. 각서의 잉크는 손끝의 온기로는 마르지 않는다. 오직 상대의 눈을 다시 바라보려는 용기로 마른다. 총성이 멎은 자리에 사람이 앉을 때, 비로소 종이는 평화가 된다. 지금 중동에서는 그 한 문장을 마주 앉아 쓸 용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